[아사히신문]인터뷰/타이치로 미타니: 일본은 근대 군사동맹의 역사로부터 교훈을 찾아야 한다   2014-08-06 (수) 09:51
historyngo   2,444

The Asahi Shimbun,  2014-07-04

 

인터뷰/타이치로 미타니: 일본은 근대 군사동맹의 역사로부터 교훈을 찾아야 한다.

 

아베 정권이 추구하는 집단적자위권 행사에 관해 정치외교사 전문가는 일본이 잠정적 적으로 상정된 국가들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이 정책을 추구한다면 이것은 결국 군사충돌로 발전할 수 있는 위험이 크다고 우려하였다

 

동경대학교 타이치로 미타니 명예교수는 최근 아사히 신문과 행한 인터뷰에서 "군사동맹에는 잠정적 적으로서 목표 국가가 존재하게 된다. 가상의 적을 설정했을 때 상황이 악화되면 가상이 적이 실제의 적이 될 수 있다는 위험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타니 교수는 일본의 안보환경을 향상시키는 유일한 길은 국가의 "전투 역량"보다는 "비전투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 경우에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유일한 평화주의적 자세와 그 것을 통한 국제사회의 신뢰에 무엇보다 의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비전투 역량은 상상의 존재가 아니다. 이것은 일본 사람들이 제2차 세계대전의 패배를 통해서 경험하고 대전 후 지난 68년 이상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실제 결과인 것이다. 우리의 상황을 무시하는 것은 현재의 국제질서에 역행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일본은 세 가지 동맹을 경험하고 있다. 처음에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영일동맹이었으며, 그 후 제2차 대전 당시 독일 및 이탈리아와 함께 삼자동맹을 맺었다. 이 두 동맹은 모두 전쟁으로 이어졌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현재까지, 일본은 미국과 미일 안보동맹을 유지하고 있다. 아시히신문은 미타니 교수에게 오늘날 일본이 추구하는 집단적 자위권에 관해서 역사로부터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문의하며 인터뷰 가졌다.  

다음 발췌문은 마타니 교수와의 인터뷰의 내용이다.

 

Q: 역사적 맥락에서 우리는 어떻게 집단적 자위권 문제를 인식해야 하나요?

A: 내가 제일 먼저 언급하고 싶은 말은 전쟁에 관한 일본인들의 관점은 전쟁에 패한 바로 직후의 관점에서부터 68년이 지난 오늘날 극도로 변했습니다. 평화헌법 9조를 전제로 한 일본 사람들의 전쟁에 대한 관점이 변하고 있습니다.

 

Q: 전쟁에서 패한 바로 직후의 관점이 무었인가요?

A: 1946년 전쟁 패배 다음 해에 동경대학교 키사부로 요코타 교수가 정치학 학술지에 “전쟁 개념의 진화”라는 주제로 논문을 실었습니다. 그 분은 당시에 국제법 분야에서 잘 알려진 석학으로 후에 대법원 원장을 역임하였습니다. 이 논문에서 요코타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은 전쟁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고 전쟁 자체의 진화를 초래했다. 이것은 전쟁이 전에는 일반적으로 합법적인 수단으로 여겨졌으나 이제는 불법으로 더 나아가 실제로는 범죄로 간주되고 있다.”라고 기술했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 시민들이 공유하던 일반적인 견해였습니다. 나는 헌법이 선포될 당시에 초등학교 학생이었습니다. 당시에 내가 잘 이해하지 못했던 헌법의 몇몇 조항이 있었으나, 전쟁을 포기하도록한 헌법 9조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일본은 전쟁에서 패배자였기 때문에 이것은 패배자의 관점에서 전쟁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입장은 일본인들이 “보통국가”를 생각하면서 미국이나 중국과 같이 전쟁의 승자적 관점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전쟁에 대한 승자의 관점’

 

Q: "전쟁에서 승자의 관점?“ 이것이 정치적 수단으로서 무력의 사용을 의미하나요?

A: 이것은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무력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고 믿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집권당과 야당 의원들 간에 전쟁의 견해가 상당히 변한 것 같습니다.

 

Q: 동맹에 대한 시민들의 관점에도 큰 변화가 생긴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미일동맹이라고 부르지 않고 미일안보조약이라고 부르지 안나요?

A: 미일동맹이라는 용어를 공식문서에 사용한 사람은 마사요시 오히라 수상입니다. 그는 처음 1979년 미국을 방문했을 때 고위외교부 관리의 요청에 의해서 “동맹”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요. 그때까지 외교부 관계자들은 안보조약을 “동맹”이라고 부르는 것을 망설였지요.

 

Q: 그것은 왜 그랬나요?

A: 1960년대 미일안보조약의 수정에 반대하는 항의운동의 충격은 일본 전역을 혼란스럽게 만들었지요. 그 운동의 목적 중 하나는 그 조약이 군사동맹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는 것이었습니다. 항의자들은 안보조약이 군사동맹으로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이 운동이 일본 정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안건이 없이 하야토 이케다 내각의 빠른 경제성장 정책이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미국 정부 관리들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고 미국은 일본 전문가이며 하버드대학교 에딘 라이샤워 교수를 주 일본 대사로 임명해서 미국과 일본간의 대화 채널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는 전쟁 전후를 통해 임명된 일본 주재 대사들 중 예외적인 분이었습니다.

 

Q: 1960년대 냉전기에 국제환경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우선 “동맹”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일반적으로 동맹에서 집단자위권은 받아들여 질 수 있는 요소라는 생각이 듭니다.

A: 동맹관계가 언제 효력을 갖게 되는지 또 무엇이 요구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일본은 전에 두 번의 동맹관계를 경험했습니다. 즉 하나는 제2차 세계대전 전이었고 또 하나는 주일전쟁으로 중국과 갈등을 겪고 있던 당시였습니다. 하나는 영일동맹이었는데 1902년부터 1923년간 효력이 있었으며 두 번이나 새롭게 재정립되었지요. 그 후 1940년에는 독일 및 이탈리아와 삼자동맹을 맺었습니다. 이 두 동맹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상태는 무엇보다 잠정적인 적국들이 설정되어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각 국의 영향력 범위에 대한 인정을 공유했다는 점입니다. 첫 영일동맹의 경우, 잠정적 공동의 적은 러시아였습니다. 영국의 영향력을 인정한 지역은 주로 중국 청나라였으며 일본의 영향력을 인정한   지역은 한국이었습니다. 이 동맹에 의하면 동맹국이 제3국과 전쟁에 돌입하면 다른 동맹국이 그 전쟁에 참여하여 원조하는 의무조항이 이었습니다.  

 

나중에 영일동맹은 순수한 방어적인 성격 보다는 공격-방어의 동맹과 같은 성격을 갖게 됩니다. 곧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을 향해서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부분적으로 일본의 21개 요구사항에 의해서 일본은 중국에서 독일의 이권을 인수받게 됩니다. 이것은 중국 민족주의의 반발을 촉발하는 계기가 됩니다. 1차 전쟁 당시 영일동맹을 통해서 일본이 중국을 잠식하는 계기를 가속화했다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Q: 선생님이 말하는 전쟁에 동참할 의무는 오늘날의 집단자위권 문제와 매우 관련이 있습니다. 독일 및 이탈리아와의 삼자 동맹은 어떠했습니까?

A: 삼자동맹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가장 긴급한 문제는 잠정적 적국이었습니다. 특별히 미국을 잠정적 적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였지요. 일본과 독일은 미국과의 전쟁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있던 독일에게 미국의 군사적 압력은 상당한 것이었습니다. 협상에서 일본 대표로 참석했던 외교부장관 요수케 마수오카는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서 미국과의 전쟁은 피할 수 없다고 결정했습니다. 당시 그는 그 전쟁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일본이 삼자동맹을 맺고 단호한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는 이것이 반드시 생각대로 될 것이라고 확신하지는 않았지만 미국과 전쟁에서 승산은 반반이라고 생각했지요.

 

Q: 그 결과는 파멸이었지요.

A: 잠정적 적국을 설정하지 않고서 군사동맹이 성립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상황이 발전되면서 잠정적 적이 실제상의 적이 될 수 있다는 위기를 매우 심각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그것이 삼자동맹의 역사적 교훈이 아니겠습니까?

 

군사동맹의 이면에 있는 논리는 전쟁억제입니다. 전쟁억제는 모험을 동반합니다. 이 논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같습니다. 오늘날 일본 정부 관리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오늘날의 중국을 잠정적 적으로 간주하고 중국에 대해서 전쟁억제수단으로 집단적자위권을 행사하고자 한다면 나는 이것이 상당한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안한 세계질서

 

Q: 증가하는 전쟁억제가 다른 나라에서 긴장을 증가시키는 것은 바로 안보딜레마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A: 냉전 이후에, 세계는 다극 체제로 변화했습니다. 소비에트연합이 해체되면서 미국이 그 공백을 채우며 확실한 지도국 위치에 설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현실은 예상과 반대로 나타났습니다. G-8국가들은 중국과 브라질을 G-20에 추가해서 새로운 세계질서를 만들고 있습니다. 패권국가들이 사라졌다는 점을 생각할 때 현재의 국제정세는 G-0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냉전이 끝난 후 2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안정된 국제질서를 이룩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Q: 거기에는 무엇이 문제인가요?

A: 역사상 오늘날처럼 이념이 부재했던 시기는 없었을 것입니다. 현재 국제정세에서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다른 이념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면, 국가의 이익에 중점을 둔 눈앞의 현실주의가 세계에 유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패권의 구조가 해체된 현실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일본에서 우리 외교의 핵심으로 미일동맹을 강화하는 경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미일안보조약이 군사동맹으로 변형되고 있는 단계라고 봅니다. 나는 그것이 국제사회의 패권구조가 해체된 후에 다극체제의 국제정치 현실에 잘 일치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Q: 이런 상황에서 어떤 종류의 외교가 필요할까요?

A: 100년 전 제1차 세계대전에 이어서 다극체제의 국제정치는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이것은 영국패권이 끝나고 미국주도의 국제정치질서가 변화해 가는 전환점이었습니다.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해군병력을 제한하는 워싱턴해군협정을 위한 국제회의를 소집하였고 다국적 조약 네트워크 형태를 취하는 워싱턴 체제가 창설되었습니다. 그 체제는 다자적 운영, 군비감축, 협력적 경제와 통화관계 등의 기능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체제가 동아시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이 워싱턴 체제를 파괴한 것이 바로 일본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워싱턴 체제의 역사적 경험과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다국적 조약의 근본 취지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Q: 일본은 안보에 관한 한 매우 어려운 선택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A: 쉽게 말하면, 전쟁을 통해서 국가적인 이익을 보호할 수 없다고 나는 믿습니다. 전쟁에 의존하는 행위는 국가의 이익을 해치는 행위입니다. 일본의 안보환경을 향상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전쟁수행능력을 강화하는 것보다 우리나라의 "비전투 역량"을 보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경우에 일본이 가장 의존해야 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유일한 평화주의 입장을 견지하고 그 것을 통해서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비전투 역량은 절대 상상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일본 사람들이 제2차 세계대전 후 전쟁 패배에서 배워서 과거 68년간 열심히 노력해서 이룩한 기정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외면하는 것은 국제관계에서 현실과 역행하는 것입니다.

 

정치에서 만병통치는 없습니다. 일본의 안보를 공고화하기 위한 단순한 대안도 찾기 쉽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 어떤 정책 결정이든 도움이 되거나 반대 결과가 나올 확률이 반반인 것입니다.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상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어떨까요 이것은 국가중심의 생각 보다는 인간중심의 생각에 근거한 것이 아닐까요?

 

(이 기사는 토시아키 미우라와 유키 이시다가 기록한 인터뷰 내용을 근간으로 작성되었음.) 

 

Source: THE ASAHI SHIMBUN

http://ajw.asahi.com/article/views/opinion/AJ201407040006

 

 

[National Interest]아시아에서 가장 위험한 뜨거운 경쟁관계: 중국 대 일본 
[월스트리트저널]중국의 무력시위에 아시아 국가들 우려 증대: 여론조사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