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즈]미국과 마주한 중국   2014-11-18 (화) 14:41
historyngo   2,211

뉴욕 타임스 2014. 10. 24

 

미국과 마주한 중국

 

뉴욕타임즈 칼럼니스트 Roger Cohen

 

2차 세계대전 이후 최근 국제사회의 변화과정을 돌이켜 볼 때 다음과 같은 현상을 인정해야 한다. , 1945년 이후 전후 세계질서가 미국의 주도로 진행되어 오고 있고, 중국은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우리 시대의 불안은 어려운 과도기의 변화와 관계가 있다는 점, 그리고 한 거대한 강대국에서 다음 강대국으로 그 지위가 이전될 때에 많은 갈등이 수반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강대국으로 부상했으며 광대한 전쟁터에서 승자로 우뚝 서 있었다.

 

인류가 역사에서 배운 것으로서 빙 둘러서 말하는 가설을 더 나아가 바르게 세우자. 그러고 나서 또 다른 전란의 발생을 피할 것을 단호히 결의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고도의 상호 통신능력을 가진 가벼운 화제를 중심으로 한 분위기의 뉴스프로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나의 움츠러들고 있는 이 행성 위에서 집단이익이라는 명목으로 개발되어진 사적인 이익을 성취하려는 꿈은 하나의 덧없는 20세기 후반의 망상이었다. 앞으로 특히 중요한 사항은 미국과 중국이 상호간에 치명적인 오해를 피하는 능력이다. 상호간의 몰이해의 상태에서 충돌하는 이익이 단계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중국과 미국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있어 무척 멀리 떨어져있다는 사실이 며칠 전 내가 싱가포르의 전 외무장관이었던 조지 이어요의 말을 들었을 때 나에게는 분명해졌다. 미국은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을 반드시 자유와 민주주의로 안내해야 한다는 의로운 확신으로 가득 찬 하나의 창도자로서의 강대국이며, 그리고 중국은 외국에 지배당한 자신의 쓰라린 체험에 의해서 다른 나라들의 문제들에 대하여 불개입이 바로 필요한 존경의 형태라는 것에 확신을 가진, 반 창도자인 중국에 대한 그의 견해를 명백하게 밝혔다. 그리고 이어요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결코 자신의 이익을 위한 불법적이고 냉소적인 이용과는 별도로 중국이 다른 강대국들에 일방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특히 도덕적으로 올바른 판단의 단순한 한 형식으로서 중국자신의 역사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중국인들은 약자를 위협하며 뽐내며 그리고 무자비하게 중상주의에 치우친 것이라고 하는 서구인들의 인식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었다.

 

이어요는 중국에 관한 깊은 지식을 갖추었으며 고도로 이해력이 뛰어나고 신중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다. 또한 그는 미국생활에서 상당한 경험을 쌓은 사람이다. 나는 독재자들이나 혹은 민주주의자들의 국토로부터 자원들을 채취해 가는데 대하여 냉소주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중국은 에볼라의 질병을 퇴치하고 혹은 자신들이 바로 이슬람국가라고 칭하는 살인자들을 중단시키는데 있어 미국만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나는 확신한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으로 말하자면, 미국이 또 다른 중동지역에서의 작은 충돌에 말려들고 있는 장면 자체가 만족스러운 것들이다. 그러나 이어요는 나로 하여금 궁금증을 갖게 한다. , 창도자의 사고방식이 비 창도자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차원에서 포용할 수 있는가, 혹은 그러한 분류조차도 받아드릴 수 있는가라는 것이 궁금하다.

 

핵심적인 문제는 예외주의 두 가지 형태이다. 즉 미국적인 것과 중국적이 것들이다. 미국은 하나의 국가 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이상이다. 미국사람들은 심지어 전쟁의 흉터와 오늘날과 같은 내면에서 보게 되는 순간에서 조차도 인류를 향한 횃불로서 그들 국가의 개념에 대해서 소극적이다. 그리고 대통령 오바마의 외교정책은 부분적으로 인기가 없다. 왜냐하면 그가 재조직하기를 바라는 대중의 열망을 지나친 방종으로 여기면서 하나의 개별적인 것들에게는 타격을 가하고 그 외에는 실패를 면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보통국가의 태도이지 결코 미국 자신의 이미지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중국의 예외주의는 확실히 강력한 것이 사실이다. 그 것이 바로 장구한 역사동안 굉장한 비 팽창주의자의 힘으로 중국을 떠받치고 있으며, 그의 자비심인 공자의 표현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 이것이 오만한 서구사회와 대조를 이루고 있는 중국의 입장이다. 중국의 공산당은, “평화로운 진보라는 그의 근간이 되는 주문을 가지고서 중원의 왕국 사상의 통합을 이루고 그의 이데올로기인 하나의 효과적인 대들보를 형성했다. “아시아가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 가의 저자인 조 스투드웰이 그것을 나에게 이메일로 보내준 것에 의하면, “사회주의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지 않는 중국의 공산당은 공자를 다시 부활시킴으로서 중원의 왕국의 예외주의에 진입했으며, 전 세계에 걸쳐 공자학회들을 설립하고 있는 중이다. 웨스턴 미시간 대학교의 왕위안 교수가 외교정책 학술지에 기고한 바와 같이 그 결과가 지구상의 모든 것의 중심 안에서 빛나는 하나의 문화로서 역사상의 중국의 능력을 확신하는 것이 널리 전개되어있는 하나의 신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그 결과가 더할 나위 없이 평화를 사랑하는 문화를 발산시키고 있다.

 

예외주의는 모든 형태들 내에서 그 집착력이 완강하다. 티베트 인들에게 중국의 평화를 사랑하는 문화에 관하여 이야기해보라. 그리고 이라크 인들에게 미국의 자유에의 헌신을 이야기해보라. 그러한 신념 내에서 아무리 반박을 많이 하고 결점들을 들춰내도 그 사람들의 수를 감소시키지는 못한다. 그러나 나는 미국의 힘에서 비롯된 자선행위와 인간의 마음속에서 바라는 근본적인 자유를 갈망하는 것, 그리고 인간이 갈망하는 그러한 자유와 일치하는 유일한 미국의 정체성이 확인됨을 믿는다.

시진핑이 인터넷에 관련하여 엄중하게 단속하고, 그가 부패를 퇴치하려는 의도는 어느 일부 형태에만 특정하게 한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남중국해에서의 그의 영해의 팽창주의는 물론 홍콩에서의 완고한 민주주의 찬성운동으로 인한 그의 어려움들의 모든 것들이 중국의 체제 내에서 제시된 조화평화에 있어서의 내부적 모순을 드러낸 것이라는 생각이 갑자기 떠오른다. 그런데 중국의 체제는 번영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것이 보다 더 부유한 사람들이 바라는 공개토론을 점증적으로 억압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20세기에 이르러 정신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황폐화된 것을 체험한 유럽인들은 예외주의 모든 형태들은 위험한 것이며, 일방적인 주창자나 비 일방적인 주창자 역시 위험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 유럽인들은 평온한 가운데 대수롭지 않는 이익추구에 안주해오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은 가까운 미래에도 그런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관계는 주의를 기울여 억제된 비관주의로 더불어 관찰되어야 한다. 전쟁이 초래하는 여파의 관점에서 보면 예외 없이 인류는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다.

 

Roger Cohen joined The New York Times in 1990. He was a foreign correspondent for more than a decade before becoming acting foreign editor on Sept. 11, 2001, and foreign editor six months later.

 

 

출처:

 

http://www.nytimes.com/2014/10/21/opinion/roger-cohen-china-versus-america.html?-r=1

 

 

 

아시아 패러독스 
[아사히신문]기고/나오토 히구치: 일본 보수주의자들은 극우에서 탈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