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5호] 2010.09.03 발행   2010-10-04 (월)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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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량을 키우자 /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학교교육지원본부 정동섭
역량을 키워야한다

올해는 1910년 8월 29일 경술 국치일로부터 100년이 되는 해다. 100년을 조명하고 미래로 나가자는 취지에서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가 ‘강제병합 100년 공동행동 한일실행위원회’를 구성, 8월 22일부터 8월 29일까지 ‘강제병합 100년 한일시민대회’를 진행했다. 나는 한국실행위원회의 운영위원 자격으로 이 대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런 저런 한국과 일본의 행사를 보면서 우리가 왜 그런 치욕을 당하게 되었을까?하는 상념에 잠기게 되었다. 외형적으로만 볼때 대한제국도 국토와 국민이 있었고 이를 경영, 통치하기 위한 행정조직과 관료제도가 황제를 정점으로 잘 짜여 있었다. 과거제도를 통하여 등용된 학식있는 인재가 중앙부서뿐만 아니라 지방까지 파견되어 행정을 담당했다. 그밖에 군대조직, 조세제도 등 국가가 그 기능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요소를 비교적 갖추고 있었다. 당시 전세계 국가들 중에서 이 정도의 진용을 갖춘 나라도 드물었고 지금과 비교해도 제도적으로 그렇게 뒤떨어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왜 그런 제국이 ‘병합’이란 이름으로 역사에서 사라져 버린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사람에 따라 다양하겠지만 저는 ‘지도자들의 역량차이’ 때문이 아니었겠냐고 생각해 본다. 이를 대내와 대외로 나눠 간략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대내적 역량에서 당시 지도자들이 국민을 계도하고 역동성을 이끌어 내는 능력이 부족했다. 사농공상의 신분질서 유지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에 과학기술과 제조업, 상업의 진흥을 통한 국가발전이라는 거시적 시각을 가지지 못했다. 당시 영국은 이미 산업혁명을 통해 앞서가고 있었고, 후발국인 미국,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이 이를 뒤쫓고 있었던 상황을 그려보면 지도자의 역량차이를 잘 알 수 있다.

다음으로 국제정세에 어두운 지도자들이 국정을 이끌고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가 서세동점의 제국주의 시대였기 때문에 우리에게 이것은 대단히 불행한 일이었다. 대외적 역량을 기대하는 자체가 무리였던 것이다. 물론 지도자 중에는 선각자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소수였고 그나마도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는 자리에 있지도 않았다.

100년전 우리에게 찾아온 불행은 지도자들 역량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한다. 파워 엘리트들이 내부의 기득권에 안주하거나 국제정세에 둔감할 때 국가와 국민도 불행해 진다는 것이다. 그로인해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 유구한 역사와 문화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에 입힌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다. 다시는 이런 일을 되풀이 겪지 않으려면 가해자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역량을 키워나가는 것도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모든 것이 내부의 문제이고 우리하기 나름이라고 말하고 싶다.
[세계NGO역사포럼 소식]
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2010년 8월, 117개의 한일시민단체가 개최한 '강제병합 100년 공동행동 한일시민대회'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지난 일본 도쿄 도시마 공회당에서 22일 개최된 한일 시민대회 개막식에는 총 1500명이 참가했으며, 27일부터 29일까지 개최된 한국 시민 대회의 총 참가자 수는 2500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행사 마지막 날인 29일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리고 있는 강제병합 100년 특별전시회와  이완용 총리대신과 일본 데라우치 통감이 한일 강제병합조약을 맺었던 통감관저가 있었던 곳에서 '통감관저터' 표석 제막식에는 장대같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에서도 많은 참석율을 보였다. 한일 실행위원회는 폐막식에서 한일시민공동선언문과 한일청년학생결의문을 낭독하고, 분야별로 행동계획을 발표하였다.같은 시각, 사할린에서는 일본 정부의 강제동원 사할린 한인 문제 해결을 위한 사할린 현지 집회에는 2,700여명이 참가했다.

‘식민주의 청산과 동아시아 평화공존' 위해 한일 시민들이 연대의 장을 마련하여, 다양한 실천적 프로그램들이 진행되었다. 먼저 '과거사청산과 동아시아 평화'라는 제목아래 국제학술대회가 이틀에 걸쳐 피해, 청산, 인식, 평화라는 단계별 구성으로 인상을 남겼다. 이 밖에도 한일 청년이 모여 열린 한일청년학생포럼, 한일 시민포럼등이 동시에 열려 선택적으로 학술회의에 참가할 수 있는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이 밖에도 진실과 미래를 위한 한일 시민 합창 공연 '평화, 그날이 오면'과 혼성합창조곡 '악마의 포식' 등의 문화행사에도 800여명의 시민들이 함께했다. 특히 폐막식 당일 저녁 열린 '한일 시민 교류의 밤'에서는 당초 200명으로 예상 참가수를 훨씬 웃도는 340여명이 참가하여, 뷔페 음식이 모자라는 사상 초유의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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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역사 NGO세계대회는 10월 3일부터 5일까지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캐나다 토론토에서 개최된다. 동아시아 역사화해를 위한 북미사회의 인식 심화 및 네트워크 강화와 해외 시민사회의 활동 및 교육 사례 경험을 통한 국내 단체드르이 역량 강화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캐나다 현지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포럼의 주요사업 중의 하나인 강제병합 100년 한일 시민대회가 끝나기가 무섭게 임시사무국에서 다시 원래 사무국이 위치한 충정로로 돌아와 강제병합 100년 시민대회를 정리하며 10월 초 예정되어 있는 2010 역사NGO 활동가 대회 준비에 여념이 없다.

역사NGO세계대회는 지난 3월 15일 동북아역사재단과 MOU협정을 맺고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NGO네트워크 확충을 장기적인 전망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그동안 매년 진행해오던 역사NGO세계대회를 2년을 한 주기를 하여 1년은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한 활동가대회(집중형)로 진행하고, 1년은 그동안 해왔던 형식대로 국내외 NGO들이 참여하는 확대형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3년에 걸친 역사NGO 세계대회 경험을 바탕으로 처음으로 해외에서 개최되는만큼 사무국 직원들은 긴장과 설레임속에 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중이다. 토론토 현지에서는 코디네이터 단체인 토론토 알파(ALPHA:제 2차 세계대전에 대한 교육 진흥과 역사 바로 알리기 협의회)가 자체 컨퍼런스로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발로 뛰며 협력하고 있다.

주요일정으로는,

10월 3일 국제심포지엄-동아시아 역사화해를 위한 지구시민사회의 역할
<North York 시민회관>
10월 4일 국내외 역사관련NGO 워크숍 -역사 NGO세계대회에 대한 의제 평가와 2011년 의제를 위한 논의
<델타 첼시 호텔>
10월 5일 필드 리서치
1. Facing History and Facing Ourselves 캐나다 지부 간담회
<토론토 대학내>
2. 라운드 테이블 디스커션-전후 사회에서의 진실과 화해
<North House>
3. 캐나다 아시아계 단체들과의 간담회
<토론토 한인회관>

이번 대회에는 국내외 역사관련NGO들이 참여하여 집중적으로 역사갈등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의 역할에 대한 논의를 하게 되며, 세계NGO역사포럼 회원단체 중에서 해외 10여명, 국내 약 20명의 참가단이 참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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